입력 : 2014.11.26 17:01

ⓒ최순호

 


염불 외우듯 무기를 가는 일


“나를 작가로 만든 책은 없다. 어느 날 문득, 시인이 되고 싶어서 시인이 되었다. 나는 읽기보다는 쓰기를 먼저 했고, 쓰다가 꼭 필요할 때만 읽었다.”


이 무슨 오만한 대답인가. 당신을 작가로 만든 책은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이응준은 처음 이렇게 대답했다. 누구보다 책읽기를 즐기고 아껴야 할 직업을 가진 예술가가, 이런 건방지고 거만한 대답을 하다니. 이어진 그의 답변은 이렇다.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 아니냐. 남이 쓴 것들에 감동받아서 인생이 변하는 작자들이 작가가 되어서는 안될 일 아니냐” 실제로 그의 데뷔작인 단편 소설 「그는 추억의 속도로 걸어갔다」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한다.


“책 한 권에 의해 인생이 변화 받았노라고 떠벌리는 인간들과는 상종하지 마라. 그들은 언제 너를 책 한 권 정도의 값어치로 팔아 넘길지 모른단다.”


이제 반전의 차례. 약관 스무살에 시인으로 등단한 이 패기만만한 청춘도 이제 40대 중반이 되었다. 패기와 오기의 모서리도 이제는 몽글몽글해졌을 만큼 시간이 흐른 것이다. 요즘에는 이런 겸손이 있다. “책을 펼치기가 겁이 날 만큼 책에 골똘해져서 시간가는 줄 모른다.”


둘 다 이응준이다. 사람은 어차피 여러 얼굴을 지닌 존재일 수밖에 없는 법이지만, 작가 이응준은 그 중 철없는 소년과 해탈한 부처의 모습을 둘 다 가지고 있다. 다른 사람에 비해 그 격차가 유달리 큰 편이지만 그래서 더 매력적일 수도.


어렸을 때 그는 별로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였다고 했다. 이런 고백을 한 적이 있다. 공적인 자리에서 동료 작가들이 자신이 얼마나 어려서부터 다독가였으며, 그래서 작가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증언을 늘어 놓으면(가령 초등학교 저학년 때 세계문학전집을 독파해버렸다는 따위의), 그 곁에 잠자코 앉아 있음으로써 덩달아 유서 깊은 애독가로 대접받고는 했지만, 이응준 본인으로서는 전혀 다독가가 아니었다는 것. 하지만 요즘은 책에 탐닉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의 표현을 빌면, 책 읽는 것 자체가 염불 외우는 것처럼,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처럼 평온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책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무기일 뿐, 자신의 책마저도 책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변하지 않았다고 했다.


 

ⓒ최순호

 


이런 캐릭터이니만큼 ‘내 인생의 책’이란 ‘난폭한’ 질문을 쉽게 받아들일 리 없다. 한참을 고민한 그가 내놓은 답변은 영국 비평가 콜린 윌슨Colin Wilson의 비평 에세이『아웃사이더』였다. 콜린 윌슨(1931~2013)은 노동자 출신의 영국 문학 비평가. 침낭으로 노숙을 하면서 대영박물관의 독서실에 다니던 중 우연 같은 운명처럼 작가 앵거스 윌슨Angus Wilson에게 발탁되었고, 약관 스물네 살 때 『아웃사이더』를 펴냈다. 이응준은 소설보다는 잘 쓰여진 외국의 비평문을 보고 자주 자극 받았다고 했다. 콜린 윌슨에게 세계적 명성을 안겨다 준 『아웃사이더』 역시 평론집이다.


 

ⓒ최순호

 


문학 너머 문화로 향하는 길


이응준은 학부와 대학원에서 독문학을 전공한 작가다. 그는 스무살 무렵 이 책을 여러 번 숙독했고, 나중에는 영문판으로 읽었다고 했다. 자신의 문체 역시 석사학위 논문을 쓰면서 확립됐다고 믿는다. 창작과 비평의 재능을 구분하는 기존의 관행에서는 예외적인 캐릭터다.


기묘한 우연이 하나 있다. 작가는 지난해 경향신문에 ‘통일 대한민국에 대한 어두운 회고’라는 에세이를 1년 가까이 연재했는데, 『아웃사이더』를 자주 들춰보며 영감을 얻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 연재가 거의 끝나가던 무렵인 2013년 12월 5일 콜린 윌슨이 영국 남서부 콘월의 한 병원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는 소식을 들었다. 20대의 어린 나이에 등단한 자신과, 역시 20대에 세계적 명성을 얻은 윌슨, 그리고 비주류일 때가 오히려 더 편한 자신의 기질과 콜린 윌슨의 아웃사이더 기질. 그는 “어쩌면 나는 기질과는 어울리지도 않는 사안에 대해 논하고 있는 스스로가 마치 콜린 윌슨이 논하고 있는 어두운 소설 속의 아웃사이더처럼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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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준은 지금 전방위 아티스트다. 전술했듯이 스무살 때 시인으로 시작했지만, 적지 않은 분량의 소설을 썼고, 그 소설 역시 순수한 문청文靑의 흔적이 선명한 『약혼』부터 좀 더 많은 대중과 만나겠다는 의지 가득한 『내 연애의 모든 것』 같은 작품도 있다. 또 『국가의 사생활』은 통일 이후 대한민국의 디스토피아를 직설적으로 형상화했다. 창작뿐만 아니다. 그는 진영 논리 선명한 2014년 대한민국에서 조중동과 한경 양쪽의 신문에 모두 칼럼을 연재해온 예외적 자유주의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문학의 경계를 넘어 영화까지도 넘보는 예외적 캐릭터이기도 하다. 한국의 문화적 지형에서는 만나기 힘든 재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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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자존을 지키기 위한 싸움


활자와 이미지를 가로지르는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는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한 사람이 특히 작가가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데는 그야말로 무자비한 용기가 필요하다. 문학은 특히 순수문학은 자유공정경쟁체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일종의 위원회 같은 것이 각각의 층계마다 조직되어 어떤 의미로든 조작을 일삼는다. 그것은 당파 이전에 치정이자 연극이기 이전에 사기이기도 하다. 나는 그런 어둡고 어두운 것들에 지배당하지 않고 직접 대중과 소통하면서 싸우고 싶었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시대의 힘을 얻어 오히려 내 문학의 고결함과 자존을 지켜내고 싶었다. 이에 관한 긴 얘기는 훗날 내가 상업영화 감독으로 성공하게 되면, 한 권의 책으로 펴낼 것이다. 그것을 기록으로 남겨 놓는 것은 문학을 하는 후배들을 위한 마음도 크다. 나는 그들이 작가로서 당당하기를 바란다. 문학 외적 요소에 의해 나처럼 휘둘리거나 고통받아야 했던 경험이 다른 누군가에게 되풀이 되지 말기를 기도한다.”(후략)


글_어수웅(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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