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27 14:47

ⓒ이덕훈

 


이갑철 Lee Gap Chul


1959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진주에서 성장했다. 1984년 신구대학 사진과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구석구석을 다니며 선조들의 삶의 정한과 신명, 끈질긴 생명력을 사진에 담아 왔다. <거리의 양키들>(1984), <도시의 이미지>(1986), <타인의 땅>(1988), <충돌과 반동>(2002), <Energy, 氣>(2007) 등의 개인전을 열었고, 2000년 미국 휴스턴에서 개최된 <포토페스트 2000>, 2002년 프랑스 몽펠리에에서 개최된 <한국현대사진가 초대전> 등의 해외 전시에 초대되었다. 작품집으로『충돌과 반동』(2002), 『가을에』(2011), 『이갑철』(2012) 등이 있고, 사가미하라 아시아 사진가상, 이명동 사진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프랑스 뷔Vu 갤러리 소속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제주-천구백팔십 ⓒ이갑철

 


신수진(아래 신) 사진전 <바람의 풍경, 제주 천구백팔십>과 사진집 『이갑철, 제주 천구백팔십』 출판 축하드립니다. 30년 전 작업을 처음 발표하셨는데, 언제 어디서 촬영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갑철(아래 이) 1979년부터 1984년까지 제주도에서 찍은 겁니다. ‘거리의 양키들’(1984) 시리즈를 작업하던 때죠. 친한 친구가 제주에서 대학을 다녀서 가끔씩 그를 만나기 위해 제주도에 갔습니다. 요즘은 제주도가 참 많이 변했지요. 지금쯤 과거의 모습을 보여줘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주도에 대한 인상을 기억하시나요?


육지 사람인 저에게는 정말 별세계나 다름없었죠. 그 때나 지금이나 저는 우리 땅에서 ‘가슴 시림’을 많이 느끼곤 하는데, 제주도는 깨끗하고 신비하지만 가슴이 시리지는 않았습니다.


 

제주-천구백팔십 ⓒ이갑철

 


‘가슴 시림’과 ‘가슴 시리지 않음’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아마 땅의 모습에서 비롯된 차이인 것 같아요. 우리 국토를 보면 그리 높지 않은 산들이 널려있고, 또 그 사이에 계곡이 있죠. 사계절의 변화도 뚜렷하고요. 그런데 제주도는 전체적으로 펑퍼짐하고 온난하며 깨끗합니다.


어떤 이는 제주의 오름에서 어머니를 느낀다고 하던데, 제주도의 순수한 자연에서 가슴 시리지 않은 따뜻함을 찾으신 건가요?


따뜻함보다는 자유감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오름에 올라서면 걸리는 것이 없습니다. 탁 트인 가운데 제주도 특유의 바람이 불지요. 그 바람과 함께 ‘와악’거리며 내지를 수 있을 것 같은 자유를 느꼈습니다.


30년은 세대가 지나고, 강산도 여러 번 바뀌는 시간입니다. 새삼스레 이 사진들을 다시 꺼내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제가 자주 전시를 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늘 사진을 찍고 있습니다. 전시 제안을 받으면 그제야 ‘뭘 할까’ 주섬주섬 사진들을 꺼내게 되는데, 이번 전시도 마찬가지 경우입니다.


 

제주-천구백팔십 ⓒ이갑철

 


그런 보따리가 수십 개가 될 테니, 이번에 그 중에 하나가 풀린 셈이네요. 혈기왕성했던 청년 시절의 사진을 다시 꺼내보니 감회가 어땠나요?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좋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슬픈 느낌도 들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참 좋으면서도 말이죠. 이번 전시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직접적으로 되돌아보지도 않았을 거예요. 비슷한 시기에 촬영했던 ‘거리의 양키들’ 시리즈가 학습된 무언가를 적용시켜 보려는 이성이 작용했다면, 이 제주 사진들은 그야말로 감성이 흘러가는 대로 작업했습니다. 이 작업에서는 사진 형식을 만들어보겠다는 그런 의식은 없었어요. 그런 면에서 좀 더 본질적인 측면이 드러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청년 이갑철의 사진과 현재 이갑철의 사진은 무엇이 같고, 어떤 점이 다를까요?


진솔함만큼은 변함이 없는 것 같아요. 30년 동안 계속 나만의 것을 찾으려고 고민했고, 나름대로 노력도 했습니다. 흔히 ‘이갑철’하면 흐트러진 프레임을 트레이드마크로 꼽는데, 나도 모르고 있었던 30년 전 사진에서도 그런 장면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제주-천구백팔십 ⓒ이갑철

 


찍힌 대상들이 낯선 사람과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대상의 힘에 이끌리기보다 스스로 부여한 힘이 느껴집니다. 그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이갑철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는 것이지요. 작가님의 방식으로 바라보는 대상마다 기운이랄까, 뿌리 깊은 생명의 힘 같은 걸 느낄 수 있는데, 초기작에도 이걸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무척 신기합니다. 이번에 발표한 사진들을 지나간 시절의 단편이라고만 여긴다면, 시간의 무상함이나 안타까움에 슬픈 마음이 드실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제 관점에서 보면 ‘무엇이 오늘의 이갑철을 만들었나’에 대한 이해가 깊어집니다. 단순히 스타일을 구사하는 작가가 아니라 뿌리 깊은 차별적 내면을 보여주는 것이지요.


맞아요. 이 전시를 하면서 ‘그 옛날부터 내게 무언가 끼가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왔다는 점에서 ‘나는 나를 속이지 않았구나’라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기분이 좋더군요. 말씀하신 부분을 추적해보면 일찌감치 타고난 무언가의 영향을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녔던 성정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성장한 것 같아요.


 

제주-천구백팔십 ⓒ이갑철

 


성장환경에서 특별히 남다르다고 할 만한 점이 있었나요?


뭐 그렇게 특별한 건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유난히 혼자 있는 걸 좋아했어요. 저는 언제나 스님이나 등대지기처럼 혼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죠. 사람 많이 만나는 것도 달갑지 않고요.


제주도가 섬이라 육지로부터 외떨어져 있는 느낌에 끌리셨는지도 모르겠네요. 말씀을 나누다 보니 앞서 함께 작품을 보면서 ‘프린트 톤이 왜 이래요?’라고 말한 것이 좀 무색해 집니다. 우리 눈이 어느새 이성적인 프린트에만 익숙해졌다는 걸 깨닫게 되기도 하고요. 필름은 뭐를 썼고, 프린트는 어떻게 하셨는지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필름은 코닥 트라이엑스Tri-X 흑백 필름 감도 400짜리를 씁니다. 현상은 바로 하지 않고, 기분이 내킬 때 합니다. 예전에는 현실적으로 작업 공간이 여의치 않아서 그러기도 했지만, 일단 기분이 내키지 않으면 안 해요. 현상을 할 때는 찍을 때의 감흥을 같이 느끼고 싶어서 막걸리도 한 잔 먹고,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현상을 합니다. 신혼 초에 단칸방에 살 때는 현상하려면 집사람에게 며칠간 친정에 가있으라고 했습니다. 방에 온통 필름을 널어야 했으니까요. 나 혼자 만끽할 수 있는 시간도 정말 좋았고, 그동안에 찍었던 세상이 방 안에 널려있는 광경에 기분이 좋았습니다.(후략)


 


글_신수진(사진심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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