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27 15:14

말이 안 돼도 좋다. 해답을 주지 않아도 좋다. 어떤 말이라도 좋으니, 내 물음을 받아주기만 하면 된다. 연인과 처음으로 헤어졌을 때, 나는 우스운 질문인 걸 알면서도 만나는 사람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이 동동 구르는 슬픔을 멈출 수 있는지 따지듯 묻곤 했다. 대답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질문을 던지면서 자연스레 나의 이야기를 꺼내야 했고, 순간순간 울컥거리던 마음은 이야기가 반복될수록 점차 잦아드는 듯했다.


당시 나는 내가 품고 다니던 질문과 같은 사람이었다.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던 감정을 끌어안고 처음 앓아보는 열병에 시달리던 스물 두 살. 그 순간을 지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어쩌면 수많은 답보다, 울음처럼 터져버린 질문에 있지 않았을까. 그것은 내가 그 속에 지독히 사로잡혀 있다는 증거였고, 그것은 곧 모든 것이 지나갈 거라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 당시 헤어졌던 연인과 우여곡절 끝에 5월 결혼을 앞두고, 나는 남몰래 또 하나의 질문을 가슴 속에 품어 본다. 결혼을 앞둔 이 맘 때,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으로 엄마를 떠올렸을, 나의 가까운 미래, ‘우리 엄마’를 말이다.


모녀관계는 서로 아주 잘 알거나 타인보다도 더 모르거나 둘 중 하나다. 지난 가을까지만 해도 너는 너의 엄마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엄마가 화났을 때 어떻게 해야 누그러지는지, 엄마가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누가 지금 엄마가 뭘 하고 있는지 아느냐고 물으면 고사리를 말리고 있을걸요, 일요일이니 성당에 가셨겠는데, 십초
내에 대답할 수 있었다. … 어느날부턴가 엄마는 방에 떨어진 수건을 집어 걸었고, 식탁에 음식이 떨어지면 얼른 집어냈다. 예고 없이 엄마 집에 갈 때 엄마는 너저분한 마당을, 깨끗하지 못한 이불을 연방 미안해했다. 냉장고를 살피다가 네가 말려도 반찬거리를 사러 시장엘 나갔다. 가족이란 밥을 다 먹은 밥상을 치우지 않고 앞에 둔 채로도 아무렇지 않게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관계다. 어질러진 일상을 보여주기 싫어하는 엄마 앞에서 네가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버린 것을 깨달았다.


- 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중에서


나는 십 초 안에 엄마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엄마가 지금 무슨 말을 듣고 싶어하는지 대답할 수 있을까. 시집을 가기도 전에, 이미 엄마에게 손님이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한 번의 이별을 앞두고, 나는 적어도 그때보다 덜 우스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번에는 사람들이 아닌 나 자신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가족, 그중에서도 딸이 전하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모았다. ‘엄마’를 주제로 사진을 찍고 책을 낸 신지혜, 조윤경, 이송희, 김인숙에게 각자 엄마에 관한 세 가지 질문을 부탁했고, 릴레이로 묻고 답한다는 룰을 정했다. 질문을 적어 내려가면서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했던 자신과 엄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면서.


글_현정아 기자


 

지혜엄마, 2013 ⓒ신지혜

 


지혜엄마


신지혜


1992년생으로 2013년 계원예술대학교 사진 · 뉴 다큐멘트를 졸업했다. 2015년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해 서울과학기술대학원에 입학하여 석사 수료 중이다. 2013년 로모카메라와 핸드폰으로 엄마를 촬영한 ‘지혜엄마’ 연작으로 미래작가상을 수상했고, 같은 해 <미래작가상 수상전>(캐논플렉스, 서울), <아트플랫폼 공모작가 초대전>(art trees gallery, 인천) 단체전에 참여했다.


 

지혜엄마, 2013 ⓒ신지혜

 

지혜엄마, 2013 ⓒ신지혜

 


“우리 엄마는요, 제 친구 엄마들이랑은 좀 달랐어요. 왜 ‘엄마’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 있잖아요. 따뜻하고 살가운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래도 저에 대한 관심이나 사랑이 넘친다는 건 알아요. 오히려 그래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커가면서 엄마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저와 엄마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압박감 사이에서 많이 갈등했거든요. 내 인생이 아니라 엄마를 위한 인생을 사는 것 같기도 했고요. 저는 제가 고등학생 때까지 공부를 잘 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그것도 다 엄마 기대치에 미치려고 공부하는 척만 한 거더라고요.


이런저런 엄마와의 갈등 속에서 더 상처가 됐던 건 저를 향한 가시 돋친 말과 표정이었어요. 그게 얼마나 바늘처럼 가슴을 쿡쿡 찌르는지 몰라요. 평소 로모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제 일상을 찍곤 했는데, 그중 제일 많이 찍힌 게 엄마더라고요. 그 사진 속에 제가 제일 싫어하는 엄마의 그 표정이 있어요. 한 가지 재밌는 건 엄마가 저한테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묘하게 사진이랑 매치가 되더라고요. 그런 것들을 사진 밑에 적어봤어요.


24년 동안 본 표정이라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상처를 받아요. 어릴 때는 엄마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싫었는데, 어느 순간 제 곁을 떠날 것 같아 불안하기도 해요. 제가 가장 많이 꾸는 꿈도 엄마가 죽는 꿈이거든요.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요. 엄마가 언젠가 떠나버릴 것 같아서. 감정이란 게 되게 복잡한 것 같아요. 죽을 만큼 싫어질 때도 이런 꿈을 꾸는 걸 보면. 아마 저도 엄마가 저를 얼만큼 사랑하는지 다 알고 있어서겠죠?”


 

 


Ask the Question


1. 엄마가 가장 예쁘게 느껴졌던 순간과 가장 초라하게 느껴졌던 순간은?


2. 내가 엄마가 된다면?


3. 지금 당신에게 가장 큰 존재는 누구인가요?


“제 눈에는 우리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예쁘죠. 그런데 요즘 들어 가끔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약속에 나가기 전에 한껏 치장하고 제 방에 들어와서 엄마 어떠냐고 물어보시는데, 그때마다 제 마음이 너무 이상한 거예요. 서글픈 마음인지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럴수록 더 성의 없이 대답하게 되더라고요. 시간이 갈수록 제 눈에 엄마의 쓸쓸함이 비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싫었나 봐요. 어릴 적에는 ‘나중에 커서 절대 엄마처럼은 안 해야지’ 그랬어요. 그런데 평소 제 행동에서 엄마모습이 그대로 보이는 거예요. 엄마를 보면서 미래의 저를 보는 듯한 느낌도 들고요. 예전 같았으면 진저리를 쳤을 텐데, 이상하게도 지금은 싫지 않아요. 오히려 엄마 나이가 될 때까지 영원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엄마를 내 안에 간직하고 싶어요. 엄마는 저에게 가장 큰 존재고 버팀목이거든요.”


 

ⓒ조윤경

 


ABOUT MAMA


엄마의 스무살


조윤경


서양화를 전공하고 있는 스물세 살 여대생 조윤경은 삼십여 년 전, 지금의 자신처럼 서양화를 전공하던 어여쁜 여대생을 떠올렸다. 1978년, 대학교 1학년 시절 엄마가 수집한 이미지와 시, 직접 쓴 글이 적힌 노트 속에는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신에게 엄마이기만 했던 한 여인의 스무 살 시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엄마의 청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조윤경은 이 노트 속에 잠들어 있던 먼 옛날의 또 다른 나를 책으로 만들었다. 그 속에는 젊은 시절 엄마의 모습과, 50세가 넘어 배운 사진 덕에 또 한 번 인생의 청춘을 맞고 있는 엄마의 작품들이 담겨있다.


 

ⓒ조윤경

 


“저는 좀 똑 부러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이게 다 엄마 때문이라고 말하면 너무 못된 딸 같지만 어쩌겠어요. 워낙 어릴 적부터 엄마가 하는 실수들을 자주 봐왔거든요. 그래서 아빠와 다투시는 모습도, 오빠가 엄마에게 함부로 대하는 모습도요. 저희 엄마는 결혼 전에 미술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조금 늦은 나이에 결혼해 지금까지 쭉 평범한 주부로 사셨어요. 야무진 성격이 못 돼서 종종 실수를 하시는데, 그때마다 엄마가 너무 작아지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파요. 나이가 들면서 제 눈에 엄마의 미숙함이나 부족한 부분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것도 싫었고요. 그런데 요즘은 엄마가 참 멋있어 보여요. 50세가 넘은 나이에 사진을 배우기 시작하셨는데, 여기저기 출사도 나가시고, 가끔 칭찬을 들은 날이면 하루 종일 신이 나서 저한테 자랑도 하고 그러시거든요. 다행이에요. 엄마가 그렇게 다시 웃을 수 있어서요.”


 

ⓒ조윤경

 


Ask the Question


1. 엄마와의 가장 소중했던 기억은?


2. 엄마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3. 엄마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2년 전 날씨 좋은 봄날이었어요. 아를 식물원과 원당 종마목장에 함께 갔었는데, 그날은 날씨도, 음식도, 컨디션도 모든 것이 완벽한 날이었어요. 그날 엄마와 정말 좋은 추억을 만들고 온 것 같아요. 올 봄에도 또 가보려고요. 엄마는 저에게 가장 편한 친구 같은 존재예요. 엄마와 있을 때가 가장 편하거든요. 얘기도 잘 통하고요. 그런데 딱 한 가지. 연애에 관해서는 항상 부딪쳐요. 부모의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건지, 조건적인 부분을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 부분이 이해되지 않거든요. 그게 좀 속상해요.”


 

MomMe1, 2011, gelatin silver print ⓒ이송희

 


妈敉


어머니 마, 어루만질 미


이송희


열여덟 살이던 2010년 가을. 영원히 곁에 있을 것만 같던 엄마의 위암 판정은 그녀에게 영원하다 믿었던 것들을 무너뜨리고, 대신 영원히 남기는 법을 찾도록 했다. 열여덟에서 열아홉이 되던 해에 그녀는 엄마와 함께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닌, 보아야 할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송희는 현재 경일대학교 사진영상학부 4학년에 재학 중으로 2012년 <숨듯이 피어>(리서울갤러리, 서울), 2014년 <대구사진비엔날레 국제 젊은 사진가展>(봉산문화회관, 대구), <대한민국 국제 포토 페스티벌>(예술의 전당, 서울) 등의 단체전에 참여했다. 2010년 전국고등학교예술실기대회 동상과 2014년 대한민국 국제 포토 페스티벌 최우수작가상을 수상했다.


 

MomMe_5, 2011, gelatin silver print ⓒ이송희

 

MomMe_6, 2011, gelatin silver print ⓒ이송희

 


Ask the Question


1. 나의 오늘에 미친 엄마의 영향은?


2. 엄마에게 상처 받은 일과 엄마에게 상처를 준 일은?


3. 엄마에게 짧게 편지를 써주세요.


“엄마는 평소 표현을 잘 해주세요. ‘보고싶어’, ‘안아줘’, ‘뽀뽀해줘’ 이렇게 연인에게나 들을 법한 말들을 엄마에게 들으며 자랐어요. 그래서 자연스레 제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일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친구 집 앞으로 찾아가 일부러 안아주고 오기도 하고, 매번 똑같은 이야기에 똑같이 눈물을 쏟고요. ‘나는 요즘 이런 생각을 해’라며 주절주절 이야기를 늘어놓기도 해요.최근에는 엄마에게 상처를 받아 펑펑 운 적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이 봤을 때는 별 일 아니지만 엄마와 딸이기 때문에 더 섭섭해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얼마 전 두 달 동안 홀로 여행을 다니면서 살을 조금 찌워왔는데, 그걸로 엄마에게 한 소리 들었거든요. 다른 엄마들은 자기 딸한테 살이 쪄도 예쁘다고 하는데, 엄마는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투덜댔죠. 이렇게 아주 가끔은 사소한 문제로 상처를 주고 받는 평범한 모녀 사이가 돼요.”


 

LONDON, 2012 ⓒ김인숙

 


안녕 엄마, 안녕 유럽


김인숙


2010년 8월 담낭암을 앓던 어머니를 떠나 보낸 후 2011년 12월에서 2012년 1월까지 30일간 유럽배낭여행을 떠났다. 공책 가득 적어놓았던 엄마에 대한 생각과 여행에 대한 기록을 엮어 작년 7월 『안녕 엄마 안녕 유럽』(GRIN NOTE)을 출간했고, 현재 대구의 로스팅 카페를 운영하며 책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들을 구상 중이다.


 

ⓒ김인숙

 


2010년, 엄마가 담낭암으로 돌아가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나서 나는 뭘해야 좋을지 몰랐다.
병상에서 하루를 살아내기 힘든 엄마에게 밝은 기운을 주고 싶어서
내가 꿈꾸던 유럽 배낭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엄마는 내 얘기를 듣다가 눈을 감고 잠들어 버리기 일쑤였지만
나에게 여자애가 어떻게 혼자 유럽을 가겠냐고 걱정을 했다 .
엄마는 유럽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돌아가셨다.
그리고 나는 유럽 여행을 시작했다.
엄마는 마지막으로 내게 말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라”


- 김인숙 『안녕 엄마 안녕 유럽』 중에서


 

ⓒ김인숙

 


Ask the Question


1. 엄마가 내게 속상하게 행동했던 적이 있나요? 언제였나요?


2. 엄마(가 하라고 했기)때문에 하게 된 일 중에 이것만은 하길 잘 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3. 엄마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어릴 적에는 엄마 때문에 속상했던 적이 많았어요. 초등학생이었을 때, 학원을 다녀오고 나면 텅 빈 집에서 혼자 빨래, 청소, 설거지를 해야 했어요. 부모님께서 자영업을 하셔서
집을 돌볼 사람이 없었거든요. 어린 저도 그 모든 일을 혼자 소화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도 밤늦게 들어오신 엄마는 정리 안 된 집에 들어와서 항상 저를 혼내셨어요. 그때는 그게 너무 억울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나에게 ‘좀 더 엄마를 도와주지 그랬어’라고 얘기해주고 싶어요. 제가 조금만 더 컸더라면 그때의 엄마에게 너무 무리하지 말고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살라고 얘기해줬을 텐데. 엄마에게 더 잘해주지 못해서 너무 미안해요. 엄마 덕분에 하게 된 일 중 가장 잘 했다고 생각하는 건 글 쓰는 법을 배운 거예요. 엄마가 갑자기 글쓰기 교실에 등록을 하셨거든요. 막상 수업 들을 때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지금까지 글 쓰는 두려움은 없어요. 만약 엄마와 함께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생긴다면 여행을 가보고 싶어요. 일본 유후인도 가보고 싶고, 파리도 가보고 싶어요. 꼭 여행이 아니어도 좋아요. 마트도 꼭 한 번 엄마와 가보고 싶은 곳이에요. 엄마가 좋아하는 과자가 뭔지도 알고, 엄마가 좋아하는 옷 스타일도 알고, 어떤 반찬을 좋아하는지 어떤 걸 싫어하는지 그런 소소한 것들을 알고 싶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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