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27 16:13

ⓒ오태진

 


오월, 광릉 숲의 꽃들


광릉 숲 바닥에 하얀 좁쌀 뿌려놓은 듯 냉이꽃이 깔렸다. 노란 동의나물 꽃이 병아리떼처럼 재잘재잘 피었다. 삶을 다한 고목 밑둥에 새 생명 벌깨덩굴이 보랏빛 꽃을 매달았다. 순백 애기나리는 꽃술까지 안으로 감추고서 수줍게 고개 숙였다. 작은 종같이 줄줄이 매달려 막 벌어지려는 흰 둥글레꽃이 이렇게나 앙증맞고 청초한지 미처 몰랐다. 흰철쭉 연분홍 꽃잎은 팔랑팔랑 날아갈 듯 얇다. 꽃잎에 찍힌 적갈색 반점이 선머슴애 닮은 소녀의 주근깨 같다. 연둣빛 새잎과 부드럽게 어우러진 파스텔톤에 눈과 마음이 환하다. 명자나무 꽃은 연록 풀밭을 배경 삼아 진홍빛이 더욱 선연하다. 꽃가루를 받은 까치박달나무 암꽃은 상아빛 이삭이 돼 주렁주렁 매달렸다. 소나무도 가느다란 수꽃을 밀어올렸다.


 

ⓒ오태진
ⓒ오태진

 


꽃보다 신록


오월 광릉 숲에선 그러나 꽃보다 신록新綠이다. 포천에 있는 국립 광릉수목원은 이 땅에서 가장 싱그럽고 아름다운 봄 숲을 품었다. 세조는 자기가 묻힐 광릉 터를 마련하고 풀 한 포기도 뽑지 말라 했다. 광릉 숲은 세조 뜻대로 550년을 고이 지났다. 서어나무 졸참나무 갈참나무… 활엽수림이 세월 따라 변해 온 끝에 절정으로 무르익은 극상림極相林이 됐다. 키가 몇 십m씩 되는 활엽수들이 일제히 아기 손같이 여린 새잎을 내민다.


 

ⓒ오태진

 


찬란한 오월의 수목원


봄날 광릉수목원 한 바퀴 8km 길을 걸었다. 쉬엄쉬엄 네 시간 넘게 봄을 호흡하며 세상 시름 다 잊었다. 원시림 속을 데크길로 가는 숲생태 관찰로엔 생명의 기운이 넘쳐난다. 잔뜩 흐린 날씨도 찬란한 새잎은 못 이겨 숲길이 환하다. 그 길 걷자면 누구든 착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무를 괴롭히듯 휘감고 올라가는 으름덩굴조차 아기 손바닥 같은 연두잎을 매달았다. 국수나무 꽃망울은 성급한 꽃가루를 연록 잎에 흘뿌려놓았다. 우중충한 암록색 가문비나무도, 상록 침엽수 주목도 가지 끝에서 밝은 새잎이 돋아난다. 활엽수도 침엽수도 눈부시도록 찬란한 오월을 노래한다. 피천득이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고 했듯.


 

ⓒ오태진

 


순한 빛깔들의 향연


자그마한 저수지 육림호를 신록과 철쭉이 에워쌌다. 호숫가 카페 베란다에 앉아 커피 한 잔 한다. 적막한 아침 호수에 팔뚝만한 잉어가 호숫물 첨벙이는 소리만 울린다. 신록이 물 위에 초록 물감으로 번져난다. 진분홍 철쭉이 수면에 흔들린다.


연두가 넘실대는 호숫가를 한 바퀴 걷고 전나무 길로 들어섰다. 아흔 살 전나무들이 꼭대기가 안 보이게 치솟아 600m를 늘어섰다. 1927년 오대산 월정사 전나무 숲에서 다섯 살 어린 나무들을 가져다 심어 가꿨다. 염마 격인 월정사 길, 부안 내소사 길과 함께 3대 전나무 길에 꼽힌다. 나무 향을 한껏 들이마신다. ‘공중의 비타민’ 피톤치드가 바로 방향芳香 물질, 향기다.


뒷산 자락 동물원도 지난다. 짝 잃은 홀아비 호랑이가 모로 누워 늘어지게 하품한다. 사무실 앞 정원과 꽃밭 지나 수생식물원까지 온통 순한 빛깔들의 향연이다. 하나도 눈에 걸리적거리는 게 없는 푸르름이다. 오월에 태어나 오월에 떠나간 피천득이 썼다. ‘내 나이 헤아려 무엇하리, 나는 지금 오월 속에 있는데.’


 

ⓒ오태진
ⓒ오태진

 


평양면옥
의정부시 의정부3동 385 I 035-877-2282


서울 필동면옥과 을지면옥 냉면은 면발이 가늘고 육수도 가벼운 편이다. 고춧가루, 파, 채 썬 고추까지 얹어 낸다. 평양냉면치고는 유별난 고명이다. 그렇듯 정통 평양냉면이라고 하기엔 튀는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어느 냉면 집보다 육수가 깔끔하고 시원해서 중독성이 강하다. 필동은 언니가, 을지는 동생이 하는 자매 식당이다. 몇 년 전엔 셋째 여동생이 잠원동에 본가평양면옥을 열었다.


세 자매가 가지 쳐 나온 의정부 큰집, 평양면옥을 광릉수목원 다녀오는 길에 들렀다. 평양면옥은 1ㆍ4후퇴 때 월남한 홍영남ㆍ김경필 부부가 1970년대 초 연천 전곡에 의자 몇 놓고 시작했다. 1976년 의정부 도심으로 옮겨와 오늘에 이른다. 전곡 시절까지 합쳐 40년이 넘었다. 큰아들이 물려받아 꾸린다.


따끈하고 구수한 면수부터 한 컵 내온다. 삼삼하고 시원한 김치, 조금 달큰한 냉면용 무김치도 세 자매 집 것과 다르지 않다. 제육과 만두 찍어 먹으라고 나오는 양념장은 달아서 따로 새우젓을 시켰다. 필동ㆍ을지와 달리 고춧가루 뿌리고 파 몇 점이라도 얹어 내는 성의가 반갑다. 얇게 썬 돼지고기, 제육은 필동보다 을지 것에 가깝다. 삶은 뒤 거의 누르지 않은 듯 두툼하고 촉축하고 부드럽다. 더 납작하게 눌러 쫀쫀한 필동 제육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긴 하다.


냉면에 쇠고기 편육 한 점, 돼지고기 두 점 얹는 것도 여동생 집들과 똑같다. 육수는 양지머리 삶아 기름 걷어내고 차게 숙성시킨 뒤 동치미 국물을 조금 섞는다. 밍밍할 정도로 슴슴하다. 그런데 육수를 자꾸 들이키면 묘하게 깊은 뒷맛이 혀를 당긴다. 거기 비하면 필동면옥 육수는 조금 더 자극적이다. 을지면옥이 본가 맛을 더 잘 물려받아 지킨다는 생각이 들었다. 냉면 1만원, 제육은 서울 여동생 집들보다 2000원 싼 1만4000원. 둘째 넷째 화요일에 쉰다.


 


사진, 글_오태진(조선일보 수석논설위원)


 


※ 기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아이폰 ‘App Store’, 안드로이드 ‘Play Store’에서
‘VON’을 검색하면 잡지를 무료 다운로드 받아 볼 수 있습니다.


아이폰 안드로이드

  • Copyright ⓒ Magazine VON & Macsav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