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5.05.27 16:19

ⓒ장련성

 


'계시'처럼 다가온 소설『몰로이』


책을 애정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내 인생의 책’을 단 한 권만 골라달라는 주문은 폭력적이다. 하지만 2012년 동인문학상 수상자인 소설가 정영문(50)은 달랐다. 그는 “내 경우 한 권을 꼽는 것이 어렵지 않은데 『몰로이』는 단연 내 인생의 책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몰로이』는 우리에게는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로 더 익숙한 아일랜드 출신 작가 사무엘 베케트Samuel Beckett(1906~1989)의 소설. 도대체 어떤 책이길래 ‘단연’이라는 부사까지 사용할 수 있었을까. 정영문은 1991년 프랑스 체류 당시 『몰로이』를 처음 읽었다고 했다. 그는 “계시 같았다”는 표현을 썼다. 이전에 읽었던 작가들의 작품과는 전혀 다른 작품이었고, 정영문으로 하여금 소설을 쓰게 한 작품이며, 거듭 읽어도 새롭게 읽히는 작품이라는 것이다. 사무엘 베케트를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로 꼽는 그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는 사무엘 베케트의 대표작을 『고도를 기다리며』가 아니라 『소설 3부작』이라고 했다. 1951년 출간된 『몰로이』와 『말론 죽다』, 1953년 출간된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수록된 소설 3부작은 소설은 서사라는 낡은 관념을 뒤엎고, 소설이라는 장르의 가능성을 그 극단까지 몰고 간, 베케트의 진수를 보여준 작품들이라고 했다.


 

ⓒ장련성

 


절망 속에 터지는 웃음
이 아이러니한 세계


3년 전 장편 『어떤 작위의 세계』로 그가 동인문학상을 받았을 때, 이 작가의 별명은 ‘한국의 베케트’였다. 삶의 무의미와 허무를 유머로 극복하고 예술로 조롱하는 한국의 베케트. 『몰로이』는 어쩌면 그 기원일 것이다. 아직 대부분의 한국 독자에게는 낯설 『몰로이』에 대한 소개를 부탁했다. 작가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몰로이와 모랑이라는 인물이 각각 등장하는 『몰로이』는 1부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인물과 배경이 모호하며, 이야기는 앞으로 나아가기보다는 계속해서 교차와 우회와 반복을 통해 표류하며 제자리를 맴도는 식으로 전개되고, 끝내는 그 모든 것 또한 인물들의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들에 지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 뭔가에 대해 말하기보다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으려는 불가능한 노력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이 소설의 불확실하고 혼란스런, 림보 같은 세계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포함해 모든 것에 대해 끝없이 회의하고, 이전에 자신이 진술한 것을 부정하고 무화하는데, 이를 통해 이 소설은 세계에 대한 이성적, 논리적 이해에, 그리고 기존의 소설적 형식에 결정적인 의문을 제기하며, 궁극적으로는 존재와 무無라는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이 소설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암울하기 짝이 없지만 그 어떤 소설보다도 유머러스하다. 삶의 가장 절망적인 지점에서 진정한 유머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을, 절망과 웃음이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아이러니를 이 소설은 여지없이 보여준다. 이 책을 접한 사람은 많지 않을 테지만 그 많지 않은 사람들이 당혹해 하고 심지어는 거부감을 느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워낙 익숙한 소설과는 다른 낯선 작품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파도에 몸을 맡기듯 이 소설이 가진 독특한 문체와 리듬에, 전복적인 사고에 스스로를 내맡기면 이상하고도 황홀한 마법에 걸린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고, 어느새 세계를 전혀 다르게 보는 눈을 갖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책 읽지 않는 국가의
암울한 미래


정영문의 글쓰기 스타일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요약이기도 하다. 실제로 그의 소설 역시 이성적 논리적 기승전결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절망과 웃음이 동전의 양면이라는 아이러니를 200% 확인시켜주는 작품들이다. 그는 기승전결이 소설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터무니없이 낡아 빠진 것이며, 그것은 소설의 넓은 범주 중 한 부분이라고 주장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삶에는 극적인 기승전결이 거의 없고, 하루하루 아무런 드라마 없이 사소하고 한 편으로는 무용한 순간들로 이뤄진 게 개인의 일생이라는 것. 하지만 기승전결로 완성한 무난한 독서도 잘 실천하지 않는 세상에서, 새롭고 낯선 베케트와 정영문의 소설이 자신의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책을 읽지 않는 시대, 책을 읽어야 한다는 당위를 그는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정영문은 강경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바보가 된다는 것”이다. 심지어 “바보가 되어도 그만이고, 어떻게든 바보가 되었으면 하는 사람은 안 읽어도 좋다”고 했다. 책 말고 바보로 살아가는데 지장을 주지 않는 너무도 많은 것들이 있으니까. 문제는 책을 멀리해 바보가 된 사람들은 스스로 바보라는 사실을 모르고, 바보로 살아가는데 흡족해 한다는 것이다. 그는 “그런 바보들이 많아지는 것은 국가적 차원의 문제인데, 그런 나라의 미래는 암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반어법도 썼다. “어쩌면 주요 20여 개국 가운데 독서율이 당당히 꼴찌인 한국이 그 사실을 머지 않은 미래에 모범적으로 잘 보여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 이미 잘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라면서. (후략)


 


글_어수웅(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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